자판기를 누르면 곰고기가 나온다? 실화냐고요?
네 그렇습니다!
자판기 천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 ‘곰고기’를 파는 자판기가 등장했습니다.
일본은 자판기 왕국답게 초밥도, 계란 프라이도, 곤충 요리도 무인 자판기에서 뽑아 먹을 수 있습니다. 자판기에서 온갖 이색 먹거리를 판매하는데 ‘야생 곰고기’ 메뉴가 하나 더 추가된 겁니다.
"관광객에 선보이려...사업성 있다 판단"
곰고기 자판기가 등장한 곳은 북부 아키타(秋田)현입니다. 혼슈 북부의 동해 연안 지역입니다.
* 일본 4개 섬 : (위에서부터)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지난해 2022년 11월 ‘소바 고로(そば五郎, Soba Goro)’라는 현지 식당이 자판기를 세웠습니다. 관광객들한테 곰고기 요리를 선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시장조사도 했답니다.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해 12월에 본격 자판기를 설치했습니다.
이용하는 사람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꽤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자판기가 들어선 곳이 센보쿠(泉北) 역 근처인데요. 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고속철 신칸센을 이용하는 승객들도 주요 고객입니다.
자판기에서 파는 곰고기...무엇?
자판기에서 어떤 곰고기가 나올지 궁금하시죠?
야생곰을 잡아 도축 시설에서 가공한 제품인데, 가격은 250g에 2,200엔, 2만 원이 조금 넘습니다. 기계 맨 위쪽에 '24시간 운영 중(영업중)'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곰고기를 무한정 공급하지는 않습니다. 일주일에 평균 10~15팩 정도만 팝니다. 왜냐면요...
야생 곰을 사냥할 수 있는 기간이 제한돼 있어서 금방 품절이 됩니다. ‘마타기’라고 불리는 현지 사냥꾼들은 정부 허가를 받아서 정해진 기간에 일정 개체 수만 곰을 사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판기 곰고기는 400km나 떨어진 도쿄에서 배송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인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자판기 앞면과 옆면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아키타현의 특산품' 지역특산물로 홍보하고 싶은 욕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곰고기는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걸까? 워낙 생소해서 가늠조차 되질 않는데요.
곰고기는 대체 무슨 맛?
자판기를 설치한 소바 고로 레스토랑 측은 이렇게 홍보합니다.
"맛이 깔끔하고 육질이 부드럽다. 잡내가 없고 식어도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조림부터 스테이크까지 다양하게 조리해서 맛볼 수 있다"
곰고기는 육질이 질긴 편이지만 기름 부위에서 단맛이 난다고 합니다. 특유의 사악한 노린내 때문에 악명도 높지만, 곰의 서식지 환경이나 먹이에 따라 육질과 향이 다르다는 설도 있습니다. 겨울잠을 대비하는 시기에 잘 먹어서 살이 잘 오른 곰이라면 지방에서 고급스러운 단맛이 난다고도 합니다.
단,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합니다. 날고기로 먹으면 기생충(선모충)에 감염될 위험이 아주 큽니다.
일본 북부 지역에선 '대중적인' 식재료
곰고기 자판기가 등장한 곳이 북부 아키타(秋田) 현이라고 말씀드렸죠. 사실 일본 북부지역에서 곰고기는 대중적인 식재료입니다. 홋카이도에서는 특히 곰고기 카레가 유명합니다. 시중에 통조림 형태로 많이 나와 있는데요. ‘熊肉(웅육)’이라고 적힌 제품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2017년 2월 SBS ‘미운우리새끼’에서도 나왔습니다. 허지웅(작가, 평론가, 칼럼니스트)이 일본 여행을 가서 곰고기를 먹는 장면이 방송된 적 있습니다.
미우새에도 등장...뜻밖의 곰고기 먹방
허지웅은 컨셉 있는 이색 음식점 ‘통조림 식당’에 들렀는데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인데도 연신 ‘맛있네, 맛있다’를 외치면서 각양각색의 통조림 요리를 즐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두둥~ 대망의 곰고기 카레!
허지웅은 맛을 보자마자 콜록거렸고, 기내에서 챙겨 온 고추장을 꺼내 비벼 먹기에 이릅(?)니다. 그러고 나서는 "오늘의 교훈! 호기심 때문에 음식을 시키지 말자"라고 덧붙입니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던 게 무려 6,150엔 (약 63,000원)이었습니다. 도전 비용이 꽤 컸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돈 버렸다”라고 합니다.
딱 하나 대박 수확이 있긴 했습니다. 뜻밖의 곰고기 먹방은 그 주 시청률 조사에서 ‘최고의 1분’을 기록했습니다. 화제몰이에선 확실히 성공이었습니다.

곰고기...맛이 문제가 아니다?
흠... 그런데 말입니다. 이 ‘곰고기’라는 게 말이죠.
단지 입맛에 맞느냐 아니냐, 이걸 따져서 먹을지 말지 결정할 먹거리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현지 음식의 정통성, 외지인에게 어필하는 이국적 특색과는 별개로 생각해 볼 이슈가 아직 남았습니다.
熊肉自販機人気です JR田沢湖駅近くの物産館
곰고기 자판기 인기...JR 다자와코역 근처 물산관
일본 마이니치 기사 (원문 보기)
마이니치 신문의 보도를 보면 “곰고기 자판기... 곰고기를 손쉽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주목받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레스토랑 전화번호까지 친절하게 실어준 걸로 봐서 홍보기사 같습니다.
곰고기의 출처는 분명 사육이 아니라 야생곰 포획이라고 했습니다. 혹시라도 멸종위기에 처한 반달곰을 사냥하는 거라면? 자연사한 죽은 곰을 거둬오는 게 아니라 죽여서 끌고 오는 거라면? 야생동물 보호차원에서 우려는 더 커집니다.
일본 곰고기 유통의 불편한 진실
일본에서 곰고기 유통이 비교적 쉬웠던 이유가 있습니다. 뭘까요?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생동물 보호조치에 대해 비난이 쏟아져도 전혀 눈치를 안 보는 거죠.
일본에 고래고기 자판기가 있다는 거, 익히 들어 아시지요? 같은 맥락입니다.
일본의 최대 포경업체인 ‘교도센파쿠’는 올해 초(2023년 1월) 도심에 자판기 4대를 설치하고 고래고기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의 비판은 거셉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일본 전역에 고래고기 자판기를 100대까지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까요.
일본 정부는 2019년 6월에 IWC (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국제포경위원회)를 탈퇴했습니다. 상업적 고래잡이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표명한 겁니다.
* 국제포경위원회 (IWC, 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고래를 무분별하게 잡아들이는 행동을 막으려고 1946년에 만들어진 국제기구. 애초 취지는 개체 수를 관리하면서 고래잡이를 허용하려는 것이었는데, 고래 수가 급격히 감소하자 1986년부터 고래잡이를 전면 금지.
이탈리아에선 곰고기 메뉴 선보였다 '뭇매'
다시 곰고기 얘깁니다.
2022년 12월에 이탈리아의 한 식당에서 곰고기를 넣어 만든 스튜를 신메뉴로 선보였습니다. “사슴보다 달콤한 곰고기를 2만 원대로 즐기라"며 홍보하다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마르시칸 불곰을 비롯해서 멸종위기에 처한 곰을 보호종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먹고 즐기면 ‘범죄’가 됩니다.
식당 측은 “식재료인 곰고기를 사냥이 합법인 슬로베니아에서 수입한다”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야심차게 선보인 곰고기 신메뉴가 뭇매를 맞는 상황에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려는 고객은 많지 않았을 듯합니다.
Japan’s bear meat vending machine proves a surprising success
The machine in the northern prefecture of Akita sells locally killed wild bear captured by hunters
일본의 곰고기 자판기...놀랍게도 성공적
북부 아키타현에 설치된 자판기에서는 사냥꾼이 현지에서 포획한 야생곰을 판매
영국 가디언 기사 (원문 보기)
보호종 야생동물을 굳이 육고기로?
일본의 곰고기 자판기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전문 식당에 들어가서 먹는 것과, 지하철역 근처 자판기에서 구매하는 것. 소비패턴이 확실히 다릅니다.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목표가 확실히 보이는데요. 국제사회가 보호종으로 지정한 야생동물을 굳이 육고기 식재료로 대중화하려는 것... 좋은 선택인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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