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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24절기] 첫 주자 입춘(立春)...들입(入)자 아닌 설입(立)자 쓰는 이유?

by 작가선생 2023. 2. 4.

 

 

20대 싱어송라이터 한로로(한지수 HANRORO)는 입춘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싱어송라이터 한로로

 

내가 기다린다는 봄
왔으니 이번엔 놓지 말라고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
첫 봄 인사를 건네줘요 피울 수 있게 도와줘요

이 마음 저무는 날까지
푸른 낭만을 선물할게 초라한 나를 꺾어가요

 

  [뮤비]  한로로 / 입춘(Let Me Love My Youth) / Official  

 

 

오늘 입춘입니다. 절기 이름에 ‘봄’이 들어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여전히 쌀쌀한 영하 날씨입니다. 봄기운을 느끼기에는 아직 많이 이른 듯하죠?

 

 

입춘부터 진짜 새해

 

입춘은 24절기 가운데 가장 첫 주자입니다. 명리학에서는 입춘부터가 진짜 새해라고 했습니다. 오늘부터 찐 계묘년, 검은 토끼의 해인 거죠. 입춘은 양력으로 대략 2월 4일경인데요. 올해는 정월대보름 ‘이브날’로 당첨됐습니다.

 

덕분에(?) 2배로 바빠졌습니다. 입춘대길이라고 큼지막하게 써서 붙여야 하고, 대보름 나물이랑 부럼 사러 마트도 다녀와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이불 둘둘 말고 궁리 중... 이불 밖으로 나올 엄두가 안 나시죠? 난방비 폭탄에, 한파에 몸과 마음이 자꾸 움츠러듭니다.

 

 

입춘이 그렇게 추워?

 

입춘 즈음 혹독한 추위는 옛말에도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입춘 추위에 장독/김칫독 깨진다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

(추위를 빌려서라도 가져온다는 뜻, 반드시 춥다는 말)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

(입춘 지나고 오히려 더 추워졌을 때 하는 말)

 

가게 기둥에 입춘이라

(추하고 보잘것없는 가게 집 기둥에 ‘입춘대길’을 써 붙인다는 뜻으로 격에 맞지 않게 엉뚱하거나 지나친 일을 할 때 나무라는 말)

 

 

들 입(入)자 아닌 설 입(立)자를 쓰는 이유?

 

그런데 입춘(立春) 한자를 잘 보면요, 들 입(入)자가 아닌 설 립(立)자를 씁니다. 봄으로 쑤욱 들어서는 날이라기보다 봄을 세우기 시작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습니다. 굳이 ‘봄을 세운다’라고 표현한 선조들. 봄을 맞는 마음가짐, 봄맞이 철학을 유추해 보는 재미가 생깁니다.

 

  입춘은 가장 '뜨거운' 절기다 (매일경제 2023. 2.3)  

김세경의 시 ‘입춘’은 입춘에 설 립(立)자를 쓴 이유를 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입춘은 한 아이가 처음으로 일어서는 것처럼 봄이 일어서는 것......

...... 아이는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서야 할 때를 알고 어느 날 벌떡 일어선다. 계절도 마찬가지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아직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는데도 때가 되면 저 아래쪽에서부터 힘찬 기운을 밀어 올린다.

벌떡 일어선 아이가 한 번도 배우지 않은 걸음마를 아장아장 완수하듯이, 입춘을 지난 계절은 늙은 겨울의 파상공세를 연쇄적으로 물리치면서 힘차게 전진한다.

 

 

 

복을 불러들이는 글 '입춘축(立春祝)'

 

네, 입춘이 그런 날이군요. 봄의 에너지처럼 우리도 힘차게 기운을 끌어올려 봅시다.

 

이불 걷어내고 총알처럼 튀어 나와 봅시다. 올 한 해 우리 집 에너지 부스터가 되어 줄 글귀 하나를 골라볼 시간입니다.

 

입춘대길

(立春大吉 설 립, 봄 춘, 큰 대, 길할 길)

입춘을 맞아 큰 복이 있기를

 

건양다경

(建陽多慶 세울 건, 볕 양, 많을 다, 경사 경)

따뜻한 기운이 일어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이렇게 입춘날에 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적은 글을 ‘입춘축(입춘-축 立春祝)’이라고 합니다. 먹을 갈아 정갈하게 써서 대문이나 문설주(문의 양쪽 기둥)에 붙이는데요. 옛날에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남한테 부탁해서라도 반드시 구해다 붙였다고 합니다.

(우측사진 출처: 뉴스1)



입춘축의 대표선수격인 ‘입춘대길’은 다들 아시지요? ‘건양다경’도 짝꿍이니 같이 외워야 합니다. 보통 2장을 써서 왼쪽에 건양다경, 오른쪽에 입춘대길, 비스듬히 붙이잖아요. 한쪽 한자는 읽었는데 다른 쪽 한자를 못 읽어 버벅 대면 체면이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조금 레벨을 높이면 이런 입춘축도 있습니다. 소리 내서 읽어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수여산 부여해 壽如山 富如海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하길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 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길  

 

마음에 닿는 입춘축이 있으세요? 하나 골라서 휴대폰에 저장해 보세요. 올 한해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돈 걱정 없이 지내시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가 엄선해 올렸습니다.

 

 

동지엔 팥죽 입춘엔 명태?

 

입춘에 대해 한껏 떠들었더니 좀 출출합니다. 동지에 팥죽 먹고 정월 대보름에 귀밝이술 마시는 것처럼 입춘에도 '절기 음식'이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궁중에서는 임금님 수라상에 ‘오신반(五辛盤)’을 올렸습니다. 파, 마늘, 달래, 부추, 미나리 같이 매운맛을 지녀 먹으면 몸을 따뜻해지는 5가지 채소를 ‘오신채’라고 합니다. 이런 쌉쌀한 채소 5가지(미나리 싹, 무 싹, 마늘, 달래, 산갓, 파 등등)를 겨자에 무쳐 생채 요리로 상차림을 한 것이 오신반입니다.

 

민가에서도 세생채(細生菜)라고 해서, 입춘에 돋아난 어린 싹이나 햇나물을 캐다 무쳐 먹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겨우내 결핍된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충하는 지혜로 보입니다.

 

 

입춘을 대표하는 별미로 ‘명태 순대’가 있습니다. 명태 뱃속 내장을 제거하고 순대 소를 채운 음식입니다. 함경도에서 즐겨 먹었다는데요. 주로 김장철에 만들어서 겨우내 줄에 꿰어 꽁꽁 얼려 두었다가 먹었고, 설 명절에는 손님에게 대접했던 별식이었습니다.

 

 

입춘 전날 밤 아무도 모르게...

 

입춘이면 행하였던 선조들의 액티비티가 있습니다.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과 ‘아홉 차리’입니다.

 

적선공덕행은, 선행으로 공덕을 쌓아 한 해를 잘 시작하자는 말입니다. 입춘 전날 밤에 수호천사가 되는 건데요. 이를테면, 밥을 한 솥 지어다 거지 움막 앞에 갖다 놓는다거나, 냇물에 몰래 징검다리를 놓는다거나, 다니기 힘든 길바닥을 곱게 다듬어 놓는 겁니다. ‘남몰래’ 하는 게 핵심입니다.

 

‘아홉 차리’ 풍속도 재밌습니다. 입춘날에는 무슨 일이든 9번씩 하는 겁니다. 아낙들은 빨래를 9번 하고, 학생들은 한번 읽을 글도 9번씩 읽었습니다. 밥도 9차례 먹고, 매도 9차례 맞았다고 합니다. 각자 맡은 일을 9번씩 반복하면서 일머리, 공부머리를 다잡고 제대로 해내려는 마음가짐을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작가선생 #한국어네이티브 #24절기 #입춘